■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Hito Steyerl-A Sea of Data)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 3, 4 전시실
■ 2022년 4월 29일~9월 18일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였는데, 히토 슈타이얼 작가님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고 갔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도슨트 님의 설명을 듣다가 발렌시아가 이케아 가방 이야기를 듣고, 아! 하고 기억이 났다. 작가님의 존재는 모를지언정 그 사건의 화제성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서, 이건희 회장님의 기증품 이중섭 전시를 보고 싶었는데 계속 매진이었다. 현장 표가 있으면 보고 아니면 메인 전시만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메인 전시는 웹 예매 4천원, 이중섭 전시는 무료)
직원 분께 문의드리니 사진에 보이는 옆쪽에서 이중섭 특별전 현장접수를 따로 받고 계셨다. 다행히 내가 도착한 뒤로 약 2시간 정도 후에 여유가 있어서 웨이팅을 걸어두었다. 시간이 다 되면 카톡으로 알림이 오고, 다시 접수처로 와서 티켓을 받아 따로 이중섭 전시 쪽으로 입장하면 된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편한 마음으로 예매QR코드를 보여드리고 입장한다. 운 좋게 도슨트 분 시간과 맞물려서 설명을 듣기로 한다. 약 4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미술전시, 특히 현대 미술 전시에는 도슨트나 오디오 가이드를 꼭 듣는 편이다. 작가의 개념이 예술로 표현된 배경을 알아야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 배경 지식이 많은 미술 애호가들은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나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상징과 비유와 창의적 결합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날 후기를 간단하게 말하면 '히토 슈타이얼-데이터의 바다' 전시가 굉장히 좋았다는 점이다. 길이가 긴 미디어 작품들이라 전체 영상을 다 관람한 것은 두 작품 밖에 안 되지만, 도슨트 분의 설명을 차분하게 들으면서 여러가지 작품에 대한 이해를 했다.
내가 설명을 듣고난 뒤 따로 집중해서 관람한 작품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24분)', '이것이 미래다(This is the Future, 16분)' 두 작품이다.
자세한 설명을 적기는 내 깜냥이 부족하고, 야성적 충동은 메인 영상과 뒷면의 환경 상호반응하는 식물들(독일로 돌아간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모니터링 되는!)이 함께 전시되어있고, 특별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작 지원을 한 작품이라고 한다. 늑대 이야기가 메인이 되는데 늑대는 디즈니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실제 양치기들에게는 골칫거리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콜로세움에서 치고받는 3D 그래픽 동물들의 모습 등 가상의 TV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한데, 전시 전체를 꿰뚫는 디지털 요소들의 사이버세상과 현실 세계의 모습을 풍자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이것이 미래다' 작품의 경우 스크린으로 영상을 감상하고, 뒤로 돌아오면 디지털 정원이 있다. 단순히 독특한 구조물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영상물의 내용은 헤자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자세히 말하기는 내용이 길고, 요점만 말하자면 화면 속 꽃과 식물의 이미지는 인공지능이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미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합성된 이미지들이 나오고 이 꽃이 실제 꽃 처럼 학명과 효능 같은 것으로 정의 된다. 그것은 SNS를 하는 사람들에게 치료와 위로, 환각을 주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설정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미래가 이미 있다면서 화면이 갑자기 투명해지고 스크린 뒤의 디지털 정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 좀 소름 돋았다. 이게 작가님이 의도하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생각한 정원과 AI가 합성한 이미지들의 정원의 갭이 너무 커서 뭔가 이게 미래라면 조금 허무한? 부질없는? 그런 의미로 느껴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디지털의 한계를 보여주고 오히려 현실의 아름다움을 더 강조하게 된 그런 배치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도슨트 분과 공간을 둘러보고 갈 때 아래 자갈이 깔려있고 LED 스크린에 꽃 같은게 있어서 정원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영상을 다 보니 엔딩에서의 느낌이 정말 강렬했다.
이런 전시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대한 설치, 미디어들로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작가님의 재능 아닐까 싶었다. 도슨트 분께서도 얘기하셨지만 저화소 이미지를 빈곤한 이미지로 표현, 비유한 것 등 작가님의 동떨어진 개념이나 상징을 연결하는 창의성이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전시 중에서 하나 정도 더 기억해보자면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배치된 '미션 완료: 벨란시지' 전시물이 있다. 작가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었던 이케아 가방과 똑같은 형태와 색깔의 명품 브랜드화... 의 그 가방은 없고 이케아 가방만 있긴 하다. 아무래도 명품 가방을 기대한 분들도 있을 것 같지만 ㅎ
아무튼 영상에서의 작가님은 '강연'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SNS의 홍보 전략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영상 말미에 강연 도중 전화가 오고 발렌시아가의 협찬 제안을 받게 되는데 오히려 작가님은 얼마나 줄 거냐고 묻는다고 한다. SNS에서 협찬은 오히려 내가 광고를 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인데, 전시 제목 '벨런시지'는 '발렌시아가 방식'을 뜻한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된 중요한 키워드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도 기억에 남는다. 이 개념은 최근의 작가님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요즘은 'Power Image'의 개념이라고 말하셨다고 한다. 과거의 저화질 이미지와 빈곤한 현실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면 요즘의 고화질 이미지들은 힘이기도 하고 전기를 많이 소모하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창의적인 해석이 가득 버무려진 여러 작품들을 보면서 모든 걸 다 이해하진 못했어도 오랜만에 신선한 느낌을 많이 받아 좋았다.
궁금하신 분들은 전시를 관람하고 꼭 안내책자를 챙기면 좋을 듯 하다. 생각보다 꽤 디테일하게 작품과 설명이 잘 들어가 있어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됐다.
한참을 여유있게 둘러보고, 다른 전시였던 '워치 & 칠' 전시와 '이중섭 특별전'까지 관람을 마쳤다.
내가 보고싶었던 이중섭 전시는 메인인 힘찬 소 그림들이 아카이브 형태의 자료만 있어서 아쉬웠지만 대신 은지화와 특히 엽서화가 굉장히 많았으며, 이중섭의 대표작과 조금 다른 결의 초중기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이중섭 전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기분 때문인지 못 봤던 엽서화를 많이 본 기분이었다. 가족과 여행했던 바다에서의 기억 등을 토대로 게와 아이들을 많이 그렸다는 설명을 읽으면서 이런 반복작업을 통한 어떤 정신적 수행, 위로 그런것들이 작가와 감상자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생성해내는 에너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전시를 무리해서 많이 봐서인가 마지막은 좀 급하게 본 감이 없잖아 있다. 결론은 오늘 봤던 메인 전시 '히토 슈타이얼' 작가의 작품이 굉장히 좋았다는 것. 즐거운 마음에 집에있는 이케아 가방을 보고 이상한 사진도 한 번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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